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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원택
작성일
2004-06-27
제목
이혼할 수 없는 결혼
이혼할 수 없는 결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비교 국가 중 한국의 이혼율이 아시아 1위라고 합니다. 세 쌍이 결혼하는 동안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하니 가히 놀라운 수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결혼을 권하는 만큼 또한 이혼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소위‘이혼을 권하는 사회’라는 것인데 특히 결혼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별로 없는 반면, 법적인 불평등, 예를 들어 주부의 공동 재산권, 호주 상속 등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고, 생활 관습적으로는 주부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이 거의 무시당하고 있으니 심하게 말하면 결혼제도가 아니라‘노예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등한 결혼제도가 현대에 새삼 생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습되어온 또 하나의‘계급’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혼을 권한다기보다 잘못된 결혼 풍습을 개선하고자하는 노력은 또 하나의‘계급투쟁’이라는 비약도 가능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참고해보면, 잘못된 결혼제도는 개선되어져야 하겠지만, 결혼 자체는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보편적인 입장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은 성격상 사회적이고 친한 동반자를 갈망하는데 특히 남녀가 서로 위안과 평안을 얻는 근원이 되는 것이라며 그 동반자를 얻는 결혼을 적극 장려합니다. 물론 가톨릭과 불교처럼 결혼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종파도 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헌신하는 수도자들이 다수 있는 이유겠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결혼 또한 또 하나의 성소로서 그 성실한 유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온 속죄의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고한 것이듯이, 남녀의 결혼 또한 더 큰 결혼 내지는 결합을 예고하는 일종의 길들이기요, 배움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종교의 입장이나 보편적인 상식은‘결혼은 하되 이혼은 가급적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일단 결혼한 후 이혼하라’는 다소 이율배반적인 현상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결혼한 제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로 반성할 점이 많지만 그래도 결혼을 권하고 싶습니다. 물론 현재와 같은 결혼 제도, 결혼 관습에 사랑하는 사람을‘노예’로 전락시키는 듯한 결혼(結婚)보다는, 보다 성숙한 인간 관계를 의미하는 영혼과 영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결혼(結魂)이길 바랍니다. 남녀의 만남은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비록 육체적인 부분에서 금욕을 하고 순결을 지킨다하더라도 영적인 부분에서 여전히 조화로운 긴장-일종의 떨림-이 지속되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기쁨입니다.
그러한 조화로운 결혼은, 비록 속세의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영적인 교통을 나누었던 성인(聖人), 성녀들의 통공에서 그 모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이 남녀 두 사람의 만남 못지 않게, 아이의 부모가 되어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비록 혈육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입양 등을 통해서 다른 아이들, 모든 아이들을 두루 사랑하는 부모가 되고자하는 결혼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수도자들도, 따지고 보면 이미 성신과 영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고, 결코 독신이 아닌, 기본적으로 동역자, 수도자들과 함께 동거하며 더 큰 동거, 그 결혼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세속적으로 결혼한 부부들보다도 훨씬 많은 아이들을 키우고있는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에서 강조하는 결혼의 궁극적인 의미도 남녀의 관계보다는 사회를 향한 부양의 의무, 사랑의 의무를, 남녀가 연대하여 조화롭게 지속하기를 바라는 신의 뜻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이혼을 권할 수 없듯이, 이혼으로 이어질 결혼 또한 절대 권할 수 없습니다. 대신, 아예 이혼이 필요 없는 결혼, 이혼이 전제될 수 없는, 이혼할 수 없는 결혼! 서로를 구속하거나 힘들게 하는 결혼이 아닌, 서로의 부족함을 깨우쳐 주고 함께 채워 가는 사랑, 그런 결혼은 꼭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하나(/)가 아닌 둘(人)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컬럼니스트/행정컨설턴트 임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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