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이웃의 쌀통` 걱정하는 쌀가게 아저씨
[ 2005. 12.14 09:04:06]
희한한 쌀가게 주인이 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무색하게, 제 곳간 채우는 일보다 이웃의 쌀통을 가득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 마석우리 ‘경춘 쌀 상회’ 주인 강희부(49)씨. 다들 마트에서 쌀을 사니 돈 벌 생각이라면 일찍 ‘업종전환’을 꾀했겠지만, 강씨는 이 일을 평생 업으로 삼았다. 벌써 16년째 한자리에서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남 어려운 사정이라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미 탓에 늘 제 곳간 비는 줄도 모르고 남한테 퍼주는 게 사람이다.
강희부씨가 남양주에 정착한 것은 1989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곳으로 내려와 쌀가게를 열었다. 처음엔 연탄가게도 같이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꺼려하는 곳까지 연탄 한 장도 마다않고 배달을 다녔다. 그러던 중 누가 빈 병과 폐품을 가져갈 수 없겠느냐고 물어왔다. 남을 돕고 싶은 마음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걸 모아서 팔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땐 재활용품이 돈이 좀 될 때라서 몇 달간 모으니까 백만 원이 되기에 그걸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분들 내의하고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방한복을 사주었죠.”
그렇게 시작된 선행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혼자 살면서 신경마비로 누워 지내는 노인을 식사수발에서 집안 청소 및 간병까지 보살피는 일을 시작으로 1992년부터는 연립단지의 자치회장직을 맡으며 경로당 건축에 앞장서고 마을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일에 헌신했다.
묵현리 산 속에서 천막을 친 채 토끼를 키우며 혼자 사는 할머니를 위해 구옥을 개조해 연탄보일러를 놓아주고 토끼장도 만들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일, 부모 없는 손자들을 키우는 노인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집수리를 해주는 일은 예사다.
집이 없어 거리에 나앉게 된 이웃에겐 어떻게든 십시일반으로 보증금을 구해 이사할 수 있게 도왔다. 타고난 팔자인지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인지 이상하게도 강씨에겐 늘 어려운 이웃이 눈에 띄었다.
모친은 가출하고 부친은 술과 당뇨병으로 일할 수 없어 힘겹게 기초생활보장으로 살아가는 형제를 친자식처럼 돌보는 것도 벌써 오래된 얘기다. 올 봄에도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바람에 공터에 나앉은 노부부를 위해 헌집을 개조해 텔레비전이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마련해준 것도 모자라 매달 약간의 후원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그에게 10년째 이장직을 맡겨놓고는 새 이장을 뽑을 생각도 않는다. 마을의 대소사가 있을 때면 시청 직원들도 그에게 먼저 상의하고 도움을 구한다. 그의 활동영역은 이장으로 있는 마석우리만이 아니라 인근 창현리, 묵현리, 외방리까지, 남양주 일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저더러 오지랖이 넓다고 하는데 남의 어려운 사정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쳐요. 그러면 마음이 계속 편치 않은걸….”
남의 어려움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그의 천성 때문에 아내 김옥님씨는 지금껏 살면서 가슴 철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인가는 온몸에 피를 묻히고 집에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알고 보니 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다들 모른 척 지나가자 혼자서 그 사람을 부축해서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처리해주느라고 그렇게 된 거예요.”
어린 형제들만 사는 지하방에 화재가 나자 주저없이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한 적도 있다. 하다못해 부부싸움을 목격해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서 말리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곤혹을 치르는 아이들을 집으로 안고 데려온 일도 부지기수이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어려운 사람들한테 남몰래 쌀을 갖다 주고, 외상값도 받는 법이 없어 집에 가져오는 생활비는 거의 없을 정도. 그 때문에 아내는 지금도 부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부창부수라고, 아내 역시 남편 못지않은 ‘봉사꾼’이 다 됐다.
강희부씨는 마을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사람들은 전기가 나가거나 물이 안 나와도 이장을 찾는다. 아마도 동네 이장을 해결사로 생각하는 듯 그의 쌀가게로 찾아온다. “이장님, 십분만”하고 앉아 신세타령에 사정 얘기를 한참 늘어놓다 고단함에 졸고 있는 그를 보고서야 “아이고, 우리 이장님 피곤하신가 보네”하고 물러난다.
“봉사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냥 건강해서 오래도록 사람들 도우면서 사는 게 행복이고 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보살펴주는 강씨의 따뜻한 마음, 고단하고 힘들어도 늘 밝고 활기 찬 모습을 잃지 않는 그의 한결같은 심성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의 쌀가게를 찾는다. (자료제공 = 삼성복지재단 02-2014-6551)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