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길에 위급한 노모업고 병원 찾은 `맹인 아들`
[파이미디어 2005.11.25 09:33:59]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한 시각장애인이 병든 노모를 살려내고, 자신의 일처럼 이웃을 돌봐온 사실이 알려져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1급 시각장애인 이종남씨. 한때 그는 지독한 가난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청춘을 아들에게 고스란히 바친 늙은 어머니를 두고 이씨는 세상을 버릴 순 없었다. 살아보겠다고 안마사 자격증을 따고 매일 세상과 싸웠다. 그는 행방불명된 형을 대신해 4살, 8살 조카들도 어엿한 사회인으로 키워냈다.
1995년 청천벽력 같은 불행이 그에게 찾아 왔다. 여든셋 어머니 이옥심씨가 쓰러졌던 것. 영양실조에 퇴행성관절염, 신경통 등 여러 질환을 한 몸에 앓고 있던 노모를 보며, 병원에선 “가망없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종남씨는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노모를 들쳐 업고 병원까지 먼 길을 걸었다. 체중 25Kg 야위어 뼈만 앙상한 노모였지만 종남씨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슴을 치며 병원을 다녔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머니 곁에서 끼니때마다 튜브를 이용해 죽을 넘겨드렸다.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결국, 그가 승리했다. 병든 노모가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세상이 포기한 ‘기적’을 시각장애인인 그가 이루어낸 것이다. 어머니를 살려낸 뒤, 종남씨는 이웃의 어른들을 자신의 부모처럼 대했다.
1999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순천지회 총무 일을 맡으면서 매년 5월 어버이날이 찾아오면 연세 지긋한 어른들을 찾아가 온천욕과 음식을 대접하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단풍구경도 시켜드렸다. 크고 작은 명절에 어르신들 용돈이며 정성껏 선물도 챙겨 드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아픔을 되새기는 ‘흰 지팡이의 날’에는 시각장애인 자녀들에게 약소하나마 장학금을 건네주기까지 한다.
종남씨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가 어머니 치료를 위해 거의 매일 집처럼 드나든 한마음의원. 그곳 최대집 원장은 “비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붙잡고 자신은 지팡이를 더듬으면서 걸어오는 걸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종남씨는 “장님으로 태어나 효도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갖은 고생과 걱정만 시켜드렸다”며 여전히 면구스러워한다. 아들된 도리로 노모의 한을 풀어드린다며 시각장애인인 배우자 김옥심씨를 만나 가정까지 꾸린 이종남씨. 그는 닳고 닳은 옷을 입어도 한 푼을 아껴 노모를 돌보고, 나누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비록, 두 눈을 잃었지만 그는 사회를 밝히는 빛이 되고 있다. (자료제공 = 아산사회복지재단)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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