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멋진 식탁'을 불우이웃에
[세계일보 2005.09.07 20:55:15]
대여섯평 남짓한 서울 정동 성공회 푸드뱅크(대표 김재열 신부) 사무실에서 만난 푸드뱅크 본부장 김한승(40·사진) 신부는 별명이 ‘주먹밥 신부’답게 선한 인상에다 겉모습은 허름했다. 서울 정동 성공회 서울대성당 뒷마당에서 열리는 ‘주먹밥 콘서트’는 8일이면 개설 1주년이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급식 봉사 7년째를 맞아 그는 더 바빠졌다.“비록 얻어 잡수시는 식사이지만, 최고의 아늑한 분위기에서 최고의 멋진 식사를 했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습니다.”김 신부는 1998년 5월부터 대형 농수산물 도매시장, 수퍼마켓, 제과점 등에서 남는 음식을 기부 받아 재가공한 뒤 전국 30개 지부(성공회 성당)를 통해 노숙자, 쪽방거주민, 독거노인 등 가난한 이웃 1만1700여명에게 하루 한끼 점심이나 저녁을 제공하는 성공회 푸드뱅크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1년 전부터 매주 수요일 정오에 성공회 서울대성당 뒷마당에서 ‘주먹밥 콘서트’를 열어 기금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신부는 8년 전 미국을 방문, 잉여농산물을 저가에 구매해 각 복지 단체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무료 공급하는 미국의 대규모 사회복지단체인 ‘푸드뱅크’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캔 음식 문화와는 달리 밥과 국, 반찬을 수반하는 복잡한 음식 문화를 갖고 있어 공급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의 푸드뱅크가 거의 중간조정자 역할에 그치는 데 반해 성공회 푸드뱅크는 잉여농산물을 받아다 일일이 조리·가공해 배식까지 진행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시설과 절차가 뒤따랐다. 그러나 김 신부는 ‘최고의 식탁과 최고의 맛’을 목표로 ‘푸드뱅크’라고 쓰여진 1t트럭 22대와 리무진 급식 버스를 구입해 운영하는 한편,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식단을 짜고 있다. 성공회 푸드뱅크는 현재 서울의 서소문공원에서 매주 화요일 석식(400명)과 대학로에서 매주 금요일 중식(150명)을 주변 노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푸드뱅크 지부격인 전국 30여개 성당에서도 무료 급식사업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김 신부는 여러 가지 여건상 식사를 하러 올 수 없는 급식취약 이웃들에게 도시락 배달과 반찬 배달도 시작했고, 내년에는 급식버스를 한 대 더 구입해 서울의 무료급식 횟수를 점차 늘려 2007년에는 주9회로 확대할 방침이다. 김 신부는 “급식 버스는 악천후나 이용자의 자존심 보호를 위해 최상의 시설”이라고 말한다.
정동 인근 직장인들에게 문화적 욕구도 충족시켜 주고 점심 대용으로 주먹밥을 제공하고 있는‘주먹밥 콘서트’는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됐다. 처음에는 “누가 넥타이 매고 주먹밥을 먹겠느냐”고 핀잔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고정 팬이 200명은 족히 된다. 그동안 주먹밥도 40종류나 개발되면서 찹쌀이 들어간 ‘환상의 주먹밥’이 탄생했다. 주먹밥을 먹은 사람은 대신 점심값을 푸드뱅크에 기탁하는데, 지금까지 기탁자가 9091명, 기탁금은 3900만원에 이른다. ‘MBC 주먹콘’과 ‘교보 주먹콘’에서 나온 기부액을 합하면 2억원을 웃돈다. ‘주먹콘’은 ‘노 개런티’ 연예인과 봉사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현재까지 총 42회의 ‘주먹콘’이 펼쳐졌는데, 모두 무료출연이다.
전인권, 정태춘 등 일류급 스타들이 대거 거쳐갔다. 주먹콘은 대중가요뿐 아니라 뮤지컬 공연팀이나 경찰군악대까지 출연하는 ‘범국민적 무대’로 자리잡았다. 김 신부는 오는 22일 저녁 서울대성당 안에서 ‘1주년 기념 주먹밥 콘서트’를 연다. 이날 70·80년대 인기를 모았던 서유석과 어니언스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김 신부는 근심이 하나 있다. 잉여음식물을 보관하고 조리하는 독립된 공간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현재는 서울대성당 식당에 얹혀 있다. 서울 도심이나 외곽에 바닥 평수 60평, 3층 규모의 도심지원센터만 확보되면 결식이웃을 위한 급식 지원 사업이 날개를 달 전망이다. 특히 버스까지 와서 식사를 할 수 없는 취약 결식계층 1600명에게 1주일씩 패키지로 반찬을 전달하는 주간 재가급식이 탄력을 받게 된다. 푸드뱅크 자원봉사자는 실제 성공회 교인만이 아니다. 종교를 초월해 4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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