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통 든 슈바이처’ 난지도에 산다
진료봉사팀 이끄는 김창환 원장
영세민 6천여명이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잡은 성산종합사회복지관 3층 식당에서는 12년째 격주로 토요일 오후 시간대에 ‘난지도 봉사팀’의 무료진료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달 30일, 진료가 있는 토요일이었다. 봉사팀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식당 테이블과 의자를 치운 뒤 바닥에는 메트리스를 깔았다. 간이병상이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지료를 받은 뒤 곧바로 병상에 누워 침을 맞았다. 간이병상은 순식간에 환자들로 꽉 찼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손에는 한약 봉지가 한움큼씩 들려 있었다.
▲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희대 한의대 본과 3~4학년생으로 구성된 이 봉사팀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김창환(62)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원장이다. 그는 서울 한강의 광활한 모래섬이었던 난지도에 쓰레기장이 생긴 1977년부터 폐쇄된 1993년까지 난지도 주민들의 주치의였다. ‘난지도 슈바이처’라는 그의 별칭은 이 때문에 생겨났다.
“그 때는 매주 토요일 오후에 난지도를 찾아갔는데, 반나절만에 200명도 넘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요.”
김 원장은 ‘파리탕’으로 그 때를 회고했다. ‘파리탕’은 파리가 빠져 죽은 커피를 말한다. 몰려드는 환자를 진료하다 무심코 커피잔을 들이키면 그것은 십중팔구 ‘파리탕’이었다. 파리떼가 유난히 들끓었던 난지도 쓰레기장 입구에 자리잡은 진료 현장에서는 커피잔에 수많은 파리들이 꼬였고 그 중 상당수는 커피에 빠져 죽어 ‘파리탕’의 ‘약재’가 되기 일쑤였다.
십수년때 토요일 ‘반납’… 파리 끓던 그곳으로 연간 사비만 1억 털어
난지도 쓰레기장은 사라졌지만 그 때의 의료봉사 정신은 난지도 봉사팀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올해로 23년째 활동하고 있는 봉사팀은 난지도 쓰레기장이 폐쇄된 뒤 난지도와 가까운 곳에 세워진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영세주민들의 주치의로 구실을 바꿨다. 그는 난지도 쓰레기장이 폐쇄되고 성산종합사회복지관이 준공되기까지 2년간 난지도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주해간 서대문구 아현동과 달동네 주민들이 많은 동작사회복지관에서 무료진료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난지도 곁으로 되돌아갔다.
김 원장에게 난지도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는 난지도 부근 수색에서 태어나 자랐다. 성장기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인류의 성자’ 슈바이처의 삶을 전해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난지도에 쓰레기장이 생기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넝마주이 등 밑바닥 인생들을 보고 서슴없이 그들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에 뛰어들게 한 데는 슈바이처의 영향이 컸다는 뜻이다.
그는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가봉공화국 랑바레네에 세운 자선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싶었으나 70년대만 해도 출국 자체가 자유롭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60년대 후반 경희대 한의대생 시절부터 무료진료 활동을 펼친 그는 1972년 같은 대학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부인 김경옥씨와 결혼하면서 큰 힘을 얻게 된다. 김씨가 물심양면으로 무료진료 활동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일평생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아가기로 약속했다”며 “착한 사람으로 알고 결혼하기는 했는데…. (그 약속을 변함없이 지켜온) 남편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난지도 시절부터 남편이 무료진료 활동을 펼치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해오고 있다.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한방약제비 등 무료진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 당시 음악교사로 몇년간 일하다 그만 두고 음악학원을 차려 운영했던 김씨다. 남편이 지금도 벌이의 대부분을 무료진료 비용으로 쓰고 있지만 불만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부창부수의 전형인 셈이다.
말은 않지만 김 원장이 현재 무료진료에 쓰는 개인 돈은 연간 1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취재해 본 결과, 그는 성산종합사회복지관 진료에 월 600만원 가량을, 연 1회 해외 진료 봉사활동엔 3천만원 가량을 사비로 대고 있다. 해외 진료봉사는 올해가 11번째로 오는 10~17일까지 카자흐스탄에서 열린다.
33년간의 병원생활 동안 휴가 한 번 간 적이 없는 김 원장. 골프는 칠 시간도 돈도 없어 배우지 않았다는 그는 봉사활동에는 시간과 의술 뿐만 아니라 엄청난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 과묵한데다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성격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 외길을 혼자서 흔들림없이 가는 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를 보면 슈바이처의 어록이 떠오른다.
‘작은 일이라도 그게 필요한 사람을 위해, 대가가 한푼 없어도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봉사하라’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만병 다스리는 데 침만한 게 없지요”
김창환 원장의 전문 진료과목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침구학이다.
그는 “침 하나만 있어도 모든 병을 조절할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침은 봉사활동의 좋은 수단”이라고 예찬했다. 뇌졸중·안면마비 등 마비질환, 요통·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 편도선염·알레르기성 비염 등 호흡기질환, 월경통·산통 등 부인과 질환, 두통·우울증·수면장애 등 신경정신과 질환, 소아 사시 등 안과질환과 음주·흡연 등 약물중독, 비만치료 등등. 특히 침이 잘 듣는다고 그가 꼽는 질병들이다.
그는 최근 양방에서 침술 양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듯 “침은 전통적인 것을 잘 이해하고 보존해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체에 존재하는 임맥과 독맥 등 14개 주요 경락과 365개 경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아픈 자리 뿐만 아니라 환부와 관련된 경혈을 찾아 침을 놓음으로써 질병을 다스리는 침술의 오묘한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지난 1972년 복막염을 앓게 됐을 때 우리나라 최초로 침술마취 수술을 받았다며 그 뒤 몇년간 침술마취 수술이 지속됐으나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침술마취 전담연구원 확보 등 지원이 있었으면 한국의 침구학이 더 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원장은 환자가 많아 지난해 2월 한방병원장에 취임한 뒤에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동안 쉬지 않고 진료를 할 정도로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었다.
“음식을 적게 먹되 과일과 채식을 좋아한다. 또 봉사생활에 전념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없고, 금주·금연에 규칙적인 생활을 해온 것도 건강유지에 한몫을 해온 것 같다.” 안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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