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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룰타리 작성일  2009-06-10
제목   약국도 보건소도 없는 외딴섬의 '구세주'

 약국도 보건소도 없는 외딴섬의 '구세주'



인천 섬지역 '병원선' 1박2일 동행 르포 의료진·약품 싣고 한 달에 한 번꼴 방문
아파도 병원 너무 멀어 고질병 두세개 안고사는 섬 주민들 무료 진료
20일 오전 9시. '병원선'이라는 글자가 푸른색 페인트로 선체(船體) 전면에 큼지막하게 쓰인 배가 외딴섬 지도(池島)에 도착하자, 바닷가에서 마른 우럭을 철사로 꿰어 햇볕에 널어 말리고 있던 어부 김탁진(63)씨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쭉 뻗었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 배에서 내리신대요? 혈압도 재야 하고, 소화제도 다 떨어졌고, 무릎도 계속 말썽인데…." 바닷바람에 검게 그을리고, 잔뜩 주름 잡힌 얼굴이 조바심 탓인지 순간 슬쩍 구겨졌다.

평생 뱃일을 하느라 인천 섬 지역 이곳저곳을 떠돌던 김씨에겐 가족이 없다. 나이가 들어 혈압이 200을 오르내리고, 관절염과 만성 간질환에 시달려도 돌봐 줄 사람은커녕 제때 치료받을 수도 없다. 인천항에서 직선거리로 73㎞ 떨어진 이 외딴섬 지도엔 병원도, 약국도 없기 때문이다.

12가구(家口), 주민 수 23명에 불과한 작은 섬에서 영업을 하려는 의사·약사는 없다. 보건소조차 없다.

지역 보건법상 '시·군·구에 한 개 이상씩 보건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그 조건만 충족시키면 지방자치단체도 이렇듯 인구가 적은 곳에 돈을 들여 보건소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몸이 아파 뭍에 있는 병원에 가려 해도 배로 2시간 이상 가야 한다. 기상 상황 때문에 그것마저 어려울 때도 많다. 김씨처럼 관절염·신경통 같은 고질병을 두세 개씩 안고 사는 이곳 주민들(평균 연령 60대)에겐 의료진과 약을 싣고 3주에 한번꼴로 섬에 와 무료 진료를 해 주는 '병원선'만이 구세주 같은 존재다.

지난 19일부터 1박2일간 기자도 의료진과 함께 이 병원선을 타고 문갑도·백아도(19일), 지도·울도(20일) 등 4개 의료 서비스 사각(死角) 지역을 돌아봤다.

◆"감기 걸려도 끙끙 앓는 수밖에"

19일 오후 3시, 대여섯평 됨직한 문갑도 마을회관엔 주민 20여명이 일찌감치 모여 있었다. 병원선이 도착하는 3주마다 한 번씩 '간이 병원'으로 바뀌는 회관엔 3시간여의 정박 시간 동안 주민 40여명이 들락거렸다. 전체 주민(103명) 4분의 1이 나온 셈이다. 이달 하순엔 병원선이 정기 점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음번 배가 오기까진 약 두 달이 걸린다.


▲ 19일 선착장에 나와 병원선 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인천 앞바다 백아도 주민들은 배가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그 사이 약국도, 보건소도 없는 이곳 주민들은 아프면 큰일이다.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맨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혈당 재려고 아침도 못 먹었어. 선생님, 빨리 체크 좀 해 줘" "감기약도 좀 넉넉하게 타 가야지…" 하는 두런거림이 들렸다.

골다공증 때문에 5년째 꼬박꼬박 약을 타 간다는 김춘복(여·63)씨는 "병원선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면서도 한편 아쉬움을 표했다. "두어달 전에 주민 하나가 바다에 빠지는 사고가 생겼어요. 급히 뭍으로 나갔지만 응급처치가 늦어서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숨이 멎어 있었죠. 섬에 나이 든 사람밖에 없으니 상시 의료기관이 있으면 좋겠어요."

김현길(70)씨는 "급할 땐 해양 경찰 헬기가 뜨니까 심각한 일은 잘 안 생겨요. 그래도 불편하죠. 감기 때문에 열이 막 치솟는데 마침 약이 없으면 어떻게 해. 죽을 병은 아니니 무리해서 육지에 갈 순 없고…. 그냥 끙끙 앓는 수밖에요"라고 말했다.

◆병원선이 구세주

19일 오후 5시 무렵, 백아도에 배가 도착하자 선착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민 6명이 기다렸다는 듯 부리나케 배에 올랐다.

간호사 두 명이 2평 남짓한 선실 마루에 평상 두 개를 펴고, 내과의사 옥찬영(25)씨와 한의사 박영돈(30)씨가 각각 탁자에 자리 잡고 앉자, 금세 선상은 양·한방 합동 진료실이 됐다. 바로 옆, 칸막이가 쳐진 2평 정도 되는 공간엔 치과의사 김성범(27)씨가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섬은 4개 섬 중 유일하게 지난해 말, 보건소가 들어선 지역이다. 하지만 다양한 의료 서비스에 목마른 환자들은 꾸준히 병원선을 찾는다.

김금순(여·73)씨는 "당뇨병 때문에 이빨도 다 빠지고, 늙어서 여기저기 안 결리는 데가 없는데 인천까지 나가려면 너무 멀어서 여기서 침도 맞고 치과 진료도 받는다"고 말했다. "배 점검 때문에 앞으로 두 달은 못 오니까 약은 넉넉하게 드릴게요"라는 의사의 말에 김씨는 한숨을 쉬었다. "두 달이나 못 온다고? 하이고, 어쩌나…."

"허리 디스크 때문에 침을 맞으러 왔다"는 이연월(여·73)씨는 의료진에게 물파스와 함께 몇 가지 상비약을 챙겨 달라고 했다가, "그건 없다"는 말을 듣고 표정이 흐려졌다. 내과 진료를 보는 옥찬영씨는 "이것저것 많이 챙겨 드리고 싶은데 공급받는 약품은 한정돼 있으니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 20일 마지막 행선지인 울도를 떠나 뭍으로 돌아오기 전, 병원선 의료진들이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상설 의료 기관이 없는 바람에 치료가 늦어져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20일 울도에선 60대 환자가 치주염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듯 몇 번씩 배 안 진료 의자 위에서 몸을 움찔했다. 치과의사 김성범씨는 "병원에 제때 못 오셔서 치주염이 너무 진행되는 바람에 염증이 심해서 치료가 더 견디기 힘드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선 방문은 한 달에 한 번꼴

병원선은 오지(奧地)·낙도 주민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이동 의료기관이다. 인천·전남·충남·경남에 1~2대씩 현재 전국에서 모두 5대의 병원선이 활약 중이다. 복지부는 1975년 이들 지역에 배 5대를 동시에 공급했고, 이 가운데 인천 병원선이 1999년에 최초로 111t 현대식 선박으로 배를 교체, 운행하고 있다.

인천 병원선의 경우, 매주 화~목의 2박3일씩 인천 외곽 12개 섬 지역을 주기적으로 돌며 환자를 치료한다. 한번 운항할 때마다 섬을 3~4개씩을 돌기 때문에 섬 하나당 병원선이 오는 횟수는 한 달에 한 번꼴. 내과·치과·한방 의사 각 한 명에, 간호사 2명 등 의료진 5명이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섬을 방문해 환자 상태를 보고, 소화제·해열제 등 배에 실은 10여 가지 약을 나눠준다. 병원선 1년 운영 예산은 시비(市費)로 약 3억3000만원.

선장 황정진(53)씨는 "섬 주민들에게 병원선은 없어선 안 될 존재지만, 다니다 보면 주민들이 원하는 약이나 서비스를 다 충족시켜 드리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리



인천=오윤희 기자 oyounhee@chosun.com 입력 :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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