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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9-04-30
제목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 “기부하고 나니 내가 더 행복해졌다”

 
[커버스토리]박순호 세정그룹 회장 “기부하고 나니 내가 더 행복해졌다”

“주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박순호(62) 세정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거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면서 나눔 문화 전파에 나섰다. 자신을 커밍아웃함으로써 기업가의 개인 기부를 늘리는 데 일조하자는 마음에서였다. 세정은 현재 ‘인디안’을 비롯해 여성복 ‘올리비아 로렌’, 남성복 ‘트레몰로’, 영캐주얼 ‘NII’ 등 10여 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패션기업이다.

또 유통, 건설, IT, 악기 등 13개 관계사에 종업원 6000명, 연매출 1조 원에 달하는 튼실한 중견기업이다.

어려움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 사업 초기부터 주변을 돕기 시작한 박 회장은 사업이 커질수록 기부와 나눔에 대한 손길도 넓혀나갔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직원들과의 사회공헌은 물론이고 개인 재산을 사회에 내놓음으로써 지역 경제인들의 ‘기부모델’이 되고 있다. 부산메세나진흥원 초대이사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세정장학회 회장, 한국과학영재학교 장학후원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몇 해 전에는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 <패션70>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세정은 그룹명보다는 ‘인디안’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사업 이야기를 해달라.

“경남 함안군 여항면에서 평범한 농가의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농사 대신 사업에 큰 꿈을 품고 부산행을 택해 메리야스 도매상인 ‘동양상회’에 취직했다. 이후 부산 진시장에 있는 ‘서울상회’를 거쳐 1968년 인근에 본인 가게인 ‘동춘상회’를 열었다. 동춘상회는 1974년 ‘동춘섬유공업사’로 발전했고, 여기서 국민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인디안’ 티셔츠가 탄생했다.

처음 만든 티셔츠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서울행 야간 열차표를 끊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인디안 추장이 황야를 바라보는 사진을 보았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판로를 개척해야 했던 내 모습과 개척자 인디안 추장이 너무나도 흡사해 보여 주저 없이 브랜드 이름을 ‘인디안’으로 결정했다.”

첫 기부의 추억은? 내 수익을 이웃과 나누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했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20년 전부터 삼랑진 평화의 마을,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마을 등 소외된 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기업가로서 내 이윤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학사업 및 학생들의 학업활동을 지원하는 데 특히 노력해 지역 중·고교생들에게 장학 혜택을 제공하고 ‘방과후 학교’와 장난감 도서관 조성사업 등 지원활동을 했다. 계층·지역 간 교육 격차를 완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싶었다.

기업으로서는 장애인, 여성 등 사회 약자를 위한 후원에도 힘써 ‘사랑의 PC 기증’ 운동과 ‘사랑의 집 고쳐주기’ 행사 등 저소득층의 주거환경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삼랑진 ‘오순절 평화의 마을’ 지원 사업은 10년 이상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으며, ‘마리아수녀회’와는 대규모 자선바자회, 음악회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

기부에 대한 철학이 따로 있는가.

“돈이 적고 큰 것을 떠나서 봉사하고 돌아올 때는 마음속 평화를 느꼈고, 기쁨도 몹시 컸다. 나라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 기업가들, 좀 더 가진 사람들이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이것이 싹이 트면 더 큰 나무가 될 것이다. 종교적으로 봐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좋은 일 하는 것은 더 널리 알려 미처 몰라서 못한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액 기부자들에겐 가족의 동의가 중요하다. 기부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부모가 하는 일은 자식이 본받게 되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데리고 다녔더니 기부와 봉사에 대한 자세가 형성된 것 같다. 한창 현장에서 뛸 적에는 집은 옷 갈아입고 잠자고 나가는 하숙집이나 다름없었지만 봉사의 자리엔 가족을 늘 대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딸 셋 중 하나가 수녀로서 평생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아내는 부산 송도에 있는 소년의 집을 운영하는 ‘마리아수녀회’의 후원회장으로 봉사한다. 소년의 집엔 중·고생이 대부분인데, 아내는 그곳에서 수백 명의 자녀를 키우는 셈이다. 최근엔 재래식 화장실과 노후한 세면대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세정 직원의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은 박 회장의 영향인 것 같다.

“실제로 기부나 봉사를 하고 나면 그렇게 기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회사의 규모를 10억 원, 20억 원 늘리는 것은 사업가로서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부를 나누는 것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다. 그 기쁨을 직원들과 나누고 싶었다.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더니 직원들도 자신의 수입에서 100분의 1이라도 덜어내는 십시일반으로 기부하고 있다.

최근에는 좀 더 체계적인 사회공헌 지원활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아름다운 가게’ 등 전문 복지기관들과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단체 헌혈, 관내 복지시설 직접 방문 등을 통해 회사 차원의 단순 기부 형태가 아닌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늘었다. 세정그룹을 떠나더라도 그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기업가들의 기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부는 뭔가 대가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큰 재물을 주었을 때는 베풀고 살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베풀면 기분이 좋아진다. 가진 자가 돈을 쓰고 마음을 베풀어야지 누가 하겠는가?

경기 또한 마찬가지다. 가진 자가 돈을 풀어야 경기가 활성화된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써야 한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처음처럼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돈은 들어온다. 하지만 돈을 적재적소에 쓸 때 그 보람과 가치는 더욱 커진다. 나는 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지고 또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활동과 관련하여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평소 나누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사회적으로 정상인인 우리를 대신하는 장애인들이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독거노인 혹은 가난한 이웃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업인들이 환원의 의미를 새겨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해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데, 불우한 독거노인들이 모여서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실버타운을 건립해 그들을 돌보며 내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 더욱 열심히 기부할 것이다.”

2009-04-16 13:25

<글·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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