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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9-04-22
제목   [길] 뇌병변 딛고 장애인 돕는 장애인

 [길] 뇌병변 딛고 장애인 돕는 장애인


가을비가 내리던 2004년 9월 11일 오전 2시 강릉 관동대 체육교육학과에 다니던 만 25세의 청년이 대학 도서관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느라 늦게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타고 가던 스쿠터가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주차 중이던 18t 트레일러에 부딪친 것이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두개골 오른쪽 앞부분이 으스러졌다"며 "희망을 갖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정해룡(30)씨는 사고 40일 만에 깨어났다. 사고 전 관동대 배구 동아리 주전 멤버이자 해수욕장 인명구조요원으로 활동하던 정씨는 사고 후 왼쪽 몸을 못쓰는 '뇌병변 2급 장애인'이 돼 서는 법,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걷기까지 1년이 걸렸다.

정씨는 "요의(尿意)를 못 느껴 침대 시트를 적시기 일쑤였다"며 "처음에는 차라리 죽고 싶었는데, 매일 대소변을 받아주시는 부모님, 유학 일정을 연기하고 병상을 지키는 동생을 보고 '내가 장남인데, 나 때문에 집안이 무너지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서울 마포구청에서 뇌병변장애를 가진 정해룡씨가 구청을 찾은 시각장애인 민원인 을 안내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정씨는 2008년 6월부터 국립재활원에서 사회 적응훈련을 받았다. 취업은 쉽지 않았다. 정씨는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많이 나지만 뇌병변 장애인은 '뇌를 다쳐서 지능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선입견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씨는 8개월에 걸친 구직활동 끝에 지난 2월 25일 마포구청의 '장애인 도우미' 자리에 취직했다. 마포구청 장애인복지팀 최은영(여·44) 주임은 "원래 비장애인이 맡아서 하는 일이지만 정씨가 맡은 뒤 민원인의 눈높이에서 일을 처리해주기 때문인지 민원인 만족도가 높다"며 "정씨는 자립 의지가 강하고 업무 성적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지난 2일 정씨는 첫 월급을 받았다. 세금 제하고 78만1130원. 그날 밤 온가족이 모여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공기업 직원인 정씨의 아버지는 "이젠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풀 차례"라며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씨는 "장애인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립을 돕는 '동료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승혁 기자 patric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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