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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9-03-06
제목   독거노인 위해 수의(壽衣) 만드는 곽경희씨 가족

 독거노인 위해 수의(壽衣) 만드는 곽경희씨 가족
"천사의 날개 달고 훨훨 날아가시길"
이인묵 기자 redsox@chosun.com
한경진 기자 kjhan@chosun.com


지난달 17일 오후 11시30분, 서울 은평구 응암동 쪽방에서 10년 넘게 혼자 살아온 조모(73) 할머니가 쓸쓸히 숨졌다. 이튿날 아침 구청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조 할머니의 유해를 수습할 때 은평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수의(壽衣) 일습을 보내왔다. 불광동에서 한복집을 하는 곽경희(郭京喜·여·49)씨가 센터 직원 편에 들려 보낸 수의였다.

곽씨는 2005년 가을부터 한달에 한벌씩 수의 일습을 만들어 복지시설에 사는 노인들과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매달 10일쯤 종로 3가 원단가게에 가서 자기 돈을 내고 삼베 6필을 산 다음 하루 2시간씩 20일간 재봉틀을 돌려서 매달 말일 완성한다. 천값과 공임을 따지면 만 4년간 4000만원 넘게 기부한 셈이다.

곽씨의 '수의 기부'는 일가친척 10여명의 '합작품'이다. 남편 이성진(53)씨는 마름질, 아들 황재(24·공익근무)씨와 승재(18·고3)씨는 다림질 담당이다. 친정 언니 향자(52)씨와 동생 명애(44)·정애(41)씨는 다림질과 재단을 거든다. 정애씨 남편 김영식(43·개인택시 기사)씨는 곽씨가 삼베를 끊어올 때마다 태워다 준다. 정애씨 딸(9)은 엄마와 이모가 바느질할 때 옆에 붙어 앉아 소소한 심부름을 한다. 곽씨의 친정 오빠 찬열(53)씨는 시시때때로 삼베값을 보탠다. 이만하면 거의 '가업(家業)' 수준이다.


▲ 3일 오후 서울 불광동 곽경희한복연구소에 곽경희씨 가족이 모여 직접 만든 수의를 펼쳐 보이고 있다. 곽경희(왼쪽부터)씨, 남편 이성진씨, 조카 김경인양, 아들 이황재씨, 제부 김영식씨, 동생 곽정애씨.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천주교 신자인 곽씨는 1994년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갔다가 단칸방에서 숨진 독거노인이 수의 없이 달랑 시트 한장에 싸인 채 입관되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때 '언젠가 외로운 분들께 수의를 만들어 드리겠다'고 결심했어요."

곽씨의 '언젠가'는 2005년에 왔다. 급성간염으로 3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한 곽씨는 더 늦기 전에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복집을 20년 넘게 했지만 수의는 한복과 달랐다. 모르는 것도 많았다. 곽씨는 "수의라고 하면 입는 옷 한벌인 줄 알았는데,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했다. 여성용 수의는 얼굴을 가리는 복건부터 옷가지·요·이불·베개까지 20종이다. 남성용도 21종이나 된다.

질긴 삼베를 다루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산 사람이 입는 옷보다 바느질도 까다로웠다. "돌아가신 다음에 입는 옷이라 피 한 방울 묻히면 안 되거든요. 처음에는 두달에 한벌 만들기도 벅찼어요." 밤에 혼자 집에서 수의를 꿰매다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이후 온가족이 거들면서 일이 차차 수월해졌다. 곽씨는 "수의를 만들다가 힘이 들 때면 수의를 받고 기뻐하는 노인들 얼굴을 생각한다"고 했다.

곽씨 가족은 수의를 '천사의 날개'라고 부른다. "산 사람한테도 '옷이 날개'라고 하잖아요. 이 세상에서 힘들게 사신 분들도 저세상에 가실 땐 저희가 만든 수의를 입고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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