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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9-02-18
제목   "12억 땅 기부" 남편 유언 지킨 할머니

 "12억 땅 기부" 남편 유언 지킨 할머니

수원=권상은 기자 sekwon@chosun.com
입력 : 2009.01.05 03:07




"남한산성에 토지가 있는데 조건 없이 내놓으려 합니다. 소문은 내지 말고 절차를 밟아 가져가십시오."

지난달 초 경기도청 산림녹지과에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장학재단의 상무인데, 재단을 설립한 고인의 부인이 토지 기부를 위임했다"고 전했다. 김창배 공원관리계장은 "도립공원 안의 사유재산을 기부하는 사례는 처음이라 전화 사기(詐欺)인 줄 알았다"고 했다.

김 계장은 지난달 18일 서울의 장학재단 사무실에서 기부계약을 체결하면서 비로소 땅 주인 엄모(81·서울시 서초구)씨를 만났다. 수수한 차림을 한 할머니로, 버스를 타고 나왔다고 했다.

엄씨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도립공원에 있는 밭 등 6필지 6770㎡(시가 12억원 상당)의 토지를 무상 기부했다. 김 계장이 고맙다는 뜻을 전하자 "남편 유언을 마음에 간직해왔는데 이제야 실천에 옮긴다. 부디 잘 활용해 달라"는 말과 함께 도장을 찍어줬다.

엄씨의 남편(1921~1992)은 원산 출신으로 6·25 전쟁 당시 월남해 건축자재와 화학제품 관련 기업을 경영하며 큰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타계하기에 앞서 "내 노력으로 만든 재산이지만, 일정 규모를 넘으면 개인의 것이 아니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엄씨는 이후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남편이 수집한 각종 토기를 전시하는 사립박물관도 만들어 뜻을 이어왔다.

엄씨가 설립한 장학재단은 100억원 정도의 기본재산을 바탕으로 전문계고나 이공계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초등학교·중학교에 과학기자재 구입비를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운영하던 박물관의 수집품 1500여 점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2004년 역시 익명을 조건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경기도는 엄씨의 토지 기부가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남한산성 보존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문수 지사는 엄 할머니를 도청으로 초청해 답례할 계획이었으나"이름을 공개하는 것도 싫다"며 한사코 거부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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