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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9-01-21
제목   [길] 대전현충원 묘지로 배달된 편지

 [길] 대전현충원 묘지로 배달된 편지
軍내 구타로 외아들 잃고 17년간 아버지가 400여통
"아들 생각하며 봉사의 삶"
조백건 기자 loogun@chosun.com



지난 9일 국립대전현충원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수신자는 '사병 1묘역 (비석) 5454번 전새한'. 1991년 12월 경기도 가평에서 군 복무 중 숨진 병사(당시 21세)다.

국립대전현충원 민원봉사실 박은희(여·42)씨는 "지난 17년간 이 병사 앞으로 400통 넘게 편지가 왔다"며 "직원들이 편지를 개봉해 묘석 앞에서 소리 내 읽어준다"고 했다.

이 편지의 발신인은 병사의 아버지 전태웅(69)씨다. 그는 경북 경산의 15평짜리 다세대주택에 부인과 단둘이 살면서, 숨진 외아들에게 보름에 한 통씩 자신의 근황을 담담하게 적은 편지를 써왔다. 아들이 숨진 직후 전씨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다 못한 부인이 "속으로 삭이지 말고 외국에 있다 치고 편지라도 써보라"고 권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그는 울산 남부경찰서 산하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30년 경력의 경찰관이었다. 군 복무 중 패혈증으로 쓰러진 아들은 군 병원 병상에서 "그만 때려요" 라고 헛소리를 했다. 아들이 숨지자 헌병대에서 "쓰러지기 전 한 달쯤 밤마다 맞았다"고 알려줬다. 부검 때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아들을 때린 선임병 5명은 모두 사법처리됐다.

그 충격으로 전씨는 경찰을 그만두고 2년쯤 술로 살았다. 그러다 '어떻게든 살아서 아들을 위해 뭔가 하자'고 결심했다. 매달 나오는 국가유공자 유족연금 90여만원을 이웃 돕는 데 쓰기로 했다. 자신의 생활비는 어린이집 차량을 운전해서 버는 80만원으로 충당한다.

그는 4년째 조손(祖孫) 가정 청소년 12명에게 겨울외투와 반찬을 나눠주고 있다. 짬짬이 중풍을 앓는 동네 노인 5명을 자기 차로 병원까지 태워다 준다. 8년째 전씨와 알고 지내는 대구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최남출(여·31)씨는 "좀처럼 아들 얘기를 하지 않아서, 주변에서는 '인정 많은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한다"고 했다.

전씨는 지난달 심근경색으로 1주일간 입원했다. 그 뒤 아들에게 "소식이 뜸했지" 로 시작되는 이런 편지를 썼다. "아버지가 지난주에 심장이 안 좋아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수술이 잘됐다. 엄마도 잘 있다. 보고 싶다."



입력 : 2009.01.1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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