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이웃들의 힘 '한가위 큰 사랑'
"외로운 중환자 살리자" 모금 부천 다니엘병원 '무료수술'에 환호
"세상은 따뜻한 곳" 얼싸안고 눈물
이용수기자 hejsue@chosun.com 입력 : 2004.09.23
22일 오후 7시 경기도 부천시 다니엘 병원 지하 1층 강당. 인근 영구임대아파트(덕유아파트) 주민 30여명이 모였다. 연단에 선 응급실 이향숙 수간호사가 “수술이 23일 12시로 정해졌어요”라고 말하자 주민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는 아이 엄마도 있었다.
서민들이 모여 사는 덕유아파트 204동 주민 4명이 이혜숙(여·52)씨를 부축하고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 18일. 얼굴이 새까맣게 변한 이씨는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차라리 날 죽여달라”고 울부짖었다.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들은 당황했고 주민들도 난감해했다.
▲ 이웃 이혜숙씨를 살리기 위해 뜻을 모은 부천시 영구임대 아파트 주민들과
다니엘병원 강대인 원장 및 병원 관계자들. (이용수기자 hejsue@chosun.com)
아파트 2층 12평 집에 살던 이씨가 목욕을 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것은 이 병원에 도착하기 10일 전이었다. 이씨는 5년 전 얼음판 위에서 넘어져 척추에 금속을 박아넣고 엉덩이뼈에 인공관절을 심는 대수술을 받은 뒤 목발에 의지해 살고 있었다. 하지만 5일을 참고 지냈다. 돌봐줄 가족도 없고 마땅한 수입도 없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처지였기 때문이다
끙끙 앓던 이씨를 발견한 주민들은 13일부터 이씨를 부축하고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병원 진단은 심각했다. 부실한 영양상태로 골다공증이 심해진 탓에 인공관절 부위와 다리뼈가 20여조각으로 산산조각 난 것이다.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다.
하지만 600만원이 넘는 수입 인공관절 가격을 합쳐 1000여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부천시 병원3군데를 전전했지만 허사였다. 다니엘 병원은 주민들과 이씨가 문을 두드린 4번째 병원.
이씨는 “죽여달라”고 했지만 주민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응급실 수간호사와 주치의도 이들을 내치지 못하고 병원 강대인(53) 원장에게 전했다. 강 원장은 고민 끝에 600만원이 넘는 인공관절 구입 비용을 대신 내주기로 결심했다.병원 직원들도 후원회를 결성해 나머지 수술비용을 모았다. 강 원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웃을 돕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들도 22일 회의에서 후원회를 결성, 수술 후 1000여만원에 달할 이씨의 병실비용과 재활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통장 김희숙(여·55)씨는 “주민이 대부분 가난해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했다. 204동 239가구 중에는 정부의 도움 없이 생활하기 힘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35가구에 이른다.
주민 김대환(82)씨는 “우리가 비록 가난하지만 위암 걸린 동네 아줌마를 위해 주민들이 38만원을 모은 적이 있고 소녀가장 학생에게도 54만원을 전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회의 도중 여기저기서 “간병은 내가 하겠다” “목욕은 내게 맡겨달라”는 외침도 들렸다.
23일 오후 12시.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 문 앞에 누운 이씨는 “고맙습니다”는 말만 10번을 더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강 원장은 “8시간 이상 걸리는 어려운 수술이지만 여러분이 간절히 바라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손을 꼭 붙잡은 주민들도 덩달아 울음을 터뜨렸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이씨를 태운 병상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힐 때 이씨가 한 말도 “고맙습니다”였다.
수술은 예상보다 이른 오후 6시쯤 끝났다. 이씨는 지금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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