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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7-02-27
제목
“죽기 전에 다 주고 떠나야지”
“죽기 전에 다 주고 떠나야지”
[한겨레신문 2007.02.27 17:53:40]
[한겨레] “죽기 전에 좋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기부를 하니 마음이 너무 좋아.”
기초생활수급자인 박영자(87) 할머니는 27일 평생 모은 재산 1천만원을 기부한 뒤 환하게 웃음지었다. 박 할머니는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900만원짜리 전세방에 살면서 알뜰살뜰 모은 ‘거금’을 이날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맡겼다. 이제 전세금을 빼고는 빈 통장만 남았지만, 마음만은 뿌듯함으로 가득한 듯했다.
박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여서 매달 33만원에 노인수당 5만원을 지원받아 살아간다. 끼니는 인근 복지관에서 해결하고 전기나 가스, 보일러 등도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자린고비이지만 이웃에게는 넉넉한 복지가인 셈이다.
모금회 쪽은 할머니의 기부 뜻을 접하고 처음에는 ‘이 돈을 보태 좋은 집으로 이사가라’고 권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거절했다. 모금회 쪽은 “할머니가 ‘지금 사는 집에 정이 들었고 주인집과도 잘 지내 이사하고 싶지 않으니 대신 어려운 사람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 의사를 확실히 했다”고 전했다.
박 할머니가 기부를 결정하는 데는 이웃에 사는 김춘희 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옥탑방에 사는 김 할머니는 2005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금 1500만원을 모두 이웃을 위한 유산으로 내놓기로 해 사회에 훈훈함을 전한 바 있다. 박 할머니는 “그를 볼 때마다 바보같이 보일만큼 환한 웃음이 좋아 보였는데 이제서야 그 웃음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문경에서 태어난 박 할머니는 보통학교까지 졸업하는 등 넉넉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험난한 삶을 살았다. 스무살에 결혼한 남편은 얼굴도 못본 채 병으로 숨졌다. 이후 바느질로 생계를 잇다 경북 경주에서 15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남의 집 살이를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오빠와 여동생도 모두 일찍 세상을 떴고,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의 딸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가재환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은 “따뜻한 사연들이 우리 사회의 나눔과 참여의 폭을 늘리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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