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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6-11-17
제목   "책 주인을 찾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제안

 "책 주인을 찾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제안
[파이미디어 2006.11.17 09:30:20]



“주인에게 책을 돌려주겠습니다. 제가 가진 책들은 일정 기간 저의 소유가 되겠지만 이 책들만큼은 저의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비록 헌책방에서 값을 치르고 샀더라도 말입니다”

최근 한 온라인 책 커뮤니티에 이색 글이 등장,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체 책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사연은 뭘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http://cafe.naver.com/bookishman.cafe)에 올라온 한 회원(ID ‘eefaith’)의 이야기는 이렇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 속에서 누군가가 쓴 글을 발견했고, 그에 감동한 나머지 글을 쓴 주인에게 문제의 책을 돌려주겠다는 것.

이 네티즌은 이 글과 함께 책에 적힌 사연들을 발췌해 올렸다. 책을 전하는 마음을 드러낸 글들인만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가 않다. 책을 선물할 때 글을 적어 주는 버릇을 가진 이라면 모두 공감할 내용.

“사이공, 생일 축하한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활하는지, 항상 지난 후에 후회하는 사람들처럼 좀 더 잘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 생활의 마지막 좋은 결실 맺기 바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념만은 변치 않길. 벗이라는 책 아직 보지 못했지만 좋은 책이라고 한다. 내년에는 네가 취직해서 나 책 사주리라 믿는다” - 9.21 형씨.

“승희, 칠월이 오는 풍경이라고 썼던가. 퍼붓는 비속에서 시작하는 칠월이 퍽 나쁘지는 않구나. 꽤 괜찮은 칠월이 될 거라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주어 본다. 너도 한 번해 봐 자기암시. 아침에 맨발로 흥건한 땅을 첨벙거리면서 오는데 기분이 좋더라. 난 억수로 쏟아지는 비가 좋아 천둥치고 번개치고. 낼부터 휴가라고 했지? 왜 근데 칭얼거려 행복해해야지. 지지배 괜히 좋으면서 그래. 미리 가서 속초에 연미 안부전하고 13일 날 간다고 해라. 장마중의 속초도 나름대로 좋을 거야. 즐겁게 황홀하게 스물여섯의 휴가를 보내고 오도록 하려무나. 오늘 참 좋다. 음악 좋고 비 좋고 배 빵빵해서 좋고. 손가락 얼른 낫고 휴가 재밌게 보내고 와. 뭐 사줄건 없고 가면서 혹! 심심하면 읽어라. 언니가 좋아하는 시집이야. 안녕” - 7.1 환상적인 언니가.

“TO. 옥수, 너도 졸업이라고 하는 것을 하네. 세상을 다 가져라” - 2001.2.24 혜경

책에 담긴 사연과 추억은 다채롭다. 특히 이 중엔 영화평론가로도 유명한 강한섭 교수에게 전해 졌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연이 있어 눈길을 끈다.

“강한섭 교수님께, 작년 이맘때 정말 행복한 기분에 푹 젖어 교수님의 시나리오 창작 수업시간에 듣던 그 시간들이 간절히 그립습니다. 행복하시고요. 건강하시고요. 가을쯤엔 괜찮은 시나리오 써서 들고 찾아뵐 수 있길 희망해 봅니다. 추신: 아직 가난해서 좋은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대종상 시나리오 작가상을 타면 멋진 선물 드릴게요” - 1991. 5.15 극작과 박진경 올림

버려졌든, 잃어버렸든, 팔았든, 어떤 이유에서 건 다른 이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과 그 속의 은밀한 사연들. 읽다보면 그 사연을, 그 책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카페 주인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한 때 시인이 되기를 꿈꿨고 다른 사람들이 데이트 하느라, 영화 보느라, 옷 사 입느라 쓴 돈을 시집과 소설책 사는데 모두 썼다는 이 이벤트의 주인공(eefaith)은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이 시집은 어떠한 경로로 헌책방에 들어왔고 그 헌책방에서 내가 사게 되었을까. 이런 시집을 보면 비록 내가 잠시 가지고 있더라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고 취지를 밝혔다.

“혹시나 위의 책들과 관련이 있는 분이 여기 계시면 기꺼이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고스란히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에 대한 회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멋있다” “감동적이다” “영화 같다”는 수많은 덧글로 호응하고 있다.

오랫동안 곁에 두고 함께 산 정든 책들을 주인에게 돌려주겠다는 한 네티즌의 제안은 독서인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책 주인들이 나타나 그 사연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해본다.

(사진 = 네티즌 ‘eefaith’ 의 책장사진)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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