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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6-11-17
제목   등에 업힌 어머니가 너무 가볍습니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너무 가볍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11.17 10:48:50]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후 제 아무리 사모곡을 부르고,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산해진미의 제상을 올려도 돌아가신 분들이 살아오실 리도, 차려진 음식을 드실 리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생전 소찬이나마 정성껏 마음의 밥상을 차려 올리는 것이 천추의 한을 남기지 않는 지혜일 것입니다.

백수를 한다 해도 살아갈 날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 같지 않은 여행을 다녀오며 사모곡을 미리 불러보는 마음으로, 소찬이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차려드리고 싶은 마음의 진지를 대신해 2회로 나누어 쓰는 짧은 연재 중 두 번째의 글입니다. / 기자주
결국 어머니는 다음날 오후에 다른 병원에 입원을 하였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무릎치료를 받았던 사람들로부터 경험담도 들어보고, MRI 필름을 들고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도 한 후 입원할 병원을 결정하였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으로 친절한 병원
전문의에게 86세라는 어머니의 나이, 수술에 따른 회복과정 등을 놓고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이런 상태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를 물었습니다. 조금은 당돌할 수도 있는 질문인데도 의사는 '내 어머니라면 수술은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당장에야 수술이 쉬울지 모르지만 연세 등을 감안할 때 몇 개월이 걸릴 수도 있는 회복과정이 더 문제라는 설명이었습니다.



▲ 맨살 보다는 주름이 훨씬 더 많은 얼굴엔 어머니가 살아온 삶의 여정과 겪어내야 했던 세월의 풍파가 새겨져 있습니다.

ⓒ2006 임윤수
MRI 사진을 세세하게 판독한 결과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예전 같을 수야 없겠지만 잘만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안 될 정도로 회복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그 병원에 입원을 하여 약물치료를 받으며 허벅지까지 깁스를 하였습니다.

졸지에 당신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울 것 같은 깁스를 한 어머니는 당분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과 함께 어머니의 지루한 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다리는 무척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깁스를 하고 3일째가 되던 날부터 혼자서 화장실을 다녀왔고, 보름쯤이 되었을 때는 깁스를 풀고 퇴원을 해도 좋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연세에 비해 회복속도가 무척 빠르고, 그동안의 치료로 인대파열로 생긴 상처 부위가 깁스를 풀어도 될 정도로 진정된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염증이 발생하지 않았고, 골절이 아니기 때문에 장시간 깁스를 하여 근력을 약화시키는 것보다는 걸음이라도 하여 근력을 키우는 운동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병원을 퇴원하던 날, 담당간호사가 보름 동안 복용할 약을 가지고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약국이 아닌 병원에서 지급해야 할 약이었던 모양입니다. 간호사는 얇은 포장지에 비추는 알약 하나하나를 가리키며 이 약이 무슨 약인가를 하나하나 설명해 줍니다. '이 약은 할머니 약 잡수시느라 소화 안 될까봐 넣은 거고, 이 약은 혹시 염증 생길까봐 넣은 거고.....'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병원엘 다녀봤지만 약을 주면서 한 알 한 알의 약을 왜 넣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을 들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목욕이었습니다. 둘째 누이가 어머니를 욕실로 모시고 들어가 뽀득뽀득, 개운하게 씻기는 것으로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늘그막하게 시작된 어머니의 침대 생활
어머니의 팔십 평생은 오직 온돌생활이었습니다. 그 동안 한 번인가 병원엘 입원하느라 병원침대를 사용한 것 외에는 오로지 온돌생활만을 한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였지만 무릎인대가 끊어진 상태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땅바닥에 앉았다 일어서야하는 온돌생활은 무리였습니다. 퇴원을 하며 어머니 방에 긴 소파를 들여놓아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횟수를 줄이려고도 했지만 그래도 무리였습니다.



▲ 어머니는 막내의 등에 업혀 찾아간 시부모님 산소 앞에서 무릎 꿇고 올리는 절을 대신해 허리를 깊게 숙이는 절을 올렸습니다.

ⓒ2006 임윤수

나중에야 어떨지 모르지만 다리가 회복되기까지는 침대생활을 하는 게 일어섰다 앉았다 하느라 무릎에 더해질 수 있는 무리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머니는 늘그막하게 침대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고루하고 답답할 정도로 땅 집과 온돌생활을 고집하셨지만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겪어야 했던 이런저런 고통을 피할 수 있으니 나름대로 침대생활이 좋기도 한가 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다리 운동을 해야 한다고 종종걸음 놓습니다. 그러다 힘에 부치면 침대에 걸터앉거나 비스듬히 누워 한숨을 자기도 하며 서서히 근력을 키워나가고 계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문득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산소엘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고루하다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아녀자는 산소엘 자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며 여간해서 산소이야길 하지 않던 어머니가 꿈에 소를 보았다며 은근슬쩍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속내를 비춥니다. 꿈에서 소는 조상이라는 설명을 덧대면서 말입니다.

어머니와의 여행, 행복하고 아름답지만 아픈 추억
팔불출이라 놀릴지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머니와의 동행이 제게 있어서는 정말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행복하고 아름답지만 추억을 확인해야 하는 아픔의 여행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추석 때도 다녀왔지만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었기에 어머니를 모시고 선산을 찾았습니다. 선산을 찾기 전에 어머니가 40여 년 전에 가봤다는 각연사엘 들렸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훌쩍 다녀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그동안 어머니를 위해서는 마음이란 것을 먹어보지 않았음을 실감합니다.

어머니가 기억하고 있던 조그마한 암자는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겨우겨우 걸음마를 하듯 각연사 경내를 돌아봅니다. 아장 아장이 아닌 구부렁구부렁한 걸음마로 경내를 돌아보며 어머니는 팔팔한 40대에 찾았던 각연사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을 겁니다.



▲ 당신의 지아비, 아버지 산소에 도착해서는 복받치는 설움을 쏟아내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6 임윤수

각연사를 나와 청국장이 맛나기로 소문난 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고, 어머니가 농사를 지을 때 농사철에 앞서 천렵을 다녔다는 갈론구곡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궁금해 하고 은근히 가보고 싶어 하셨던 곳이지만 어머니는 힘에 부치는지 차에서 내리질 않았습니다. 차 안에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갈론을 나와 선산을 찾았습니다. 선산이 댐과 경계를 이루고 있어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산소엘 가려면 계단처럼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선산에 도착해서야 어머니는 당신의 다리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셨는지 '먼발치에서 봤으니 그냥 가자'고 하십니다. 집을 나서며 이미 어머니를 업어야 한다는 것을 짐작했었고, 그냥 갈 수는 없기에 등을 들이대며 업히라고 하니 머뭇거릴 뿐 딱히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어머니를 등에 업고 비탈진 바윗길을 천천히 올라섰습니다. 제대로 된 길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웠지만 어머니가 수수깡으로 만든 것처럼 가볍기에 커다란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등에 업힌 어머니에게 "엄마, 막내가 업어주니 좋아"하고 물으니 어머니는 넋두리를 하듯 "좋기는 좋은데 힘들게 해서 미안하지. 그리고 이렇게 될 때까지 살면 안 되는 건데"하며 풀죽은 한마디를 합니다.

너스레를 떨 듯 "엄마가 나 애기였을 때 업어준 거 쬐끔 갚는 건데 뭐"했더니 어머니는 "그때는 먹고 사느라 나놓기만 했지 제대로 업어주지도 못했다. 아침에 밥 한 술 뜨면 밭에 나갔다 깜깜해서야 돌아왔어. 니들은 큰누나가 업어 키웠어"하십니다. 비탈길을 올라서느라 힘도 들고 숨도 가빠왔지만 어린애처럼 목덜미를 잡고 매달려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오고 눈물이 돌았습니다.

"나 애기였을 때 업어준 거 쬐금 갚는 건데 뭐"
산소 앞에 내린 어머니는 구부릴 수 없는 다리를 대신에 한껏 허리를 낮춰 시부모님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주름투성이인 손으로 두 분이 합장된 산소를 어루만지시며 눈에 띄는 잡초를 제거하십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어머니 혼자 시부모님들께 하고 싶은 넋두리라도 있을지 몰라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 차령 10년이 넘었기에 정말 부담 없이 찻길이 뚫린 곳이면 어디든지 부리고 다닐 수 있기에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이 가능했을 겁니다.

ⓒ2006 임윤수

어머니에게도 고부갈등이라는 것이 있었겠지만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당신이 죽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아래 묻어 달라는 말을 합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살며 집안 살림을 일궈서 그런지 어머니가 가장 그리워하는 대상은 바로 당신의 시부모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마음으로나마 한 소절쯤의 사모곡을 불렀을 시간이 지나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길을 내려와 아버지 산소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감히 내 차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울퉁불퉁한 산길로 접어듭니다. 남들처럼 모셔야 할 만큼 비싼 차도, 긁히는 것이 부담 갈만큼 새 차도 아니기에 마음껏 부리고 다리는, 차령 10년이 넘은 차이기에 거칠 것 없이 아버님 산소를 향해 산길을 운전합니다. 기껏 경운기 정도나 다닐 만큼 좁고 험한데다 원체 왕래가 없어 길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수풀까지 우거지니 웬만한 차들은 긁히는 소리에 엄두도 못 낼 그런 산길입니다.

4륜을 구동시키며 '덜컹덜컹' '부릉 부르릉'거리며 산모퉁이를 돌고 세 개의 고개를 넘어서야 아버님 산소엘 도착합니다. 차에서 내려 꼬부랑꼬부랑 산소에 도착한 어머니는 살아온 세월이 서러운 것인지 아니면 늙어버린 당신 모습이 서러운 것인지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하고 대뜸 '여봐유 나 좀 데려가유'하며 아버지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시작합니다.

마치 살아계신 남편을 만나기라도 한 듯 한참동안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더니 일구월심 그래왔듯 자식들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과 함께 눈에 띄는 잡초들을 뽑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팔이라도 잡은 듯 볼록한 봉분을 의지해 산소 한 바퀴를 돌아보더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십니다. 평지에선 걸음마를 하듯, 비탈진 길에선 어부바를 하며 풀밭에 야트막하게 엎드려 있는 차로 갑니다.



▲ 모든 세상의 어머니들이 그러하겠지만 늙어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구부렁한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희로애락을 봅니다.

ⓒ2006 임윤수

차에 올라앉아 활짝 열린 창문으로 점차 멀어져가는 고향산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는 하늘보다도 깊어 보이는 상념의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자식에게도 드러내놓을 수 없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 비록 때 이른 사별로 반평생정도만을 함께 살아야 했지만 죽을 때까지 지아비로 모셔야 하는 남편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이 주름 골마다 진하고도 깊게 배어 있었습니다. 덜커덩거리는 뒷좌석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없이 작게만 보이는 것은 어머니가 정말 작아서가 아니라 다시금 걸음마를 해야 할 만큼 야위었고 늙었기 때문일 겁니다.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늙어 버린 어머니! 누구나 가야 할 길이지만 그 늙어가는 길조차 구부렁구부렁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과 삶의 희로애락을 봅니다.


덧붙이는 글
어디 내 어머니만 그렇겠습니까. 세상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감히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이 글을 올린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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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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