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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한울타리
작성일
2006-09-18
제목
버려진 털실로 꽃신 만드는 `재활용할머니`
버려진 털실로 꽃신 만드는 `재활용할머니`
[파이미디어 2006.09.18 16:11:41]
버려진 털실을 주워 다 꽃신을 만들어 `착한사람`에게 나눠주는 팔순 할머니가 있다.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에 사는 이종숙(80) 할머니는 꽃신으로 유명해진 환경운동가다.
할머니의 안방은 재활용 작업장이다. 남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헌옷이며 우유팩이 쌓여있고, 재활용 끈과 털실로 만든 옷과 양말이 눈에 띈다. 할머니는 손바닥만한 빨간색 라디오를 틀어놓고 짬짬이 뜨게질을 한다. 털실을 넣어둔 바구니는 막내아들 유치원 보낼 때 산 것. 족히 40여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뜬 꽃신만 1만 켤레가 넘는다나. 어른 손가락 두 마디 크기지만 1천300번 털을 구비구비 돌아 꽃신을 토해낸다. 신의 밑창과 윗대를 따로 삼아야하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애초부터 작은 건 아니었다. 짜투리를 가지고 애면글면하다보니 작아졌다.
꽃신엔 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 민주주의가 싹트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는 것과 같다"는 영국 신문기자의 `오만한` 말을 듣고, 할머니는 쓰레기통을 뒤져 버려진 옷이며 털실을 주워 다 꽃신을 뜨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꽃신을 장미로 마무리하는 팔순 노인의 속뜻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께서 밭에서 콩을 심다가 저보고 그랬어요. 하나는 땅속 굼벵이가 먹을 거, 또 하나는 날짐승이 먹을 거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이 먹을 건데... 굼벵이와 날짐승이 못 먹으면 사람도 못 사는 법이야."
할머니는 과일을 먹어도 버리는 게 없다. 씨는 땅에 뿌리고 껍질은 짐승에게 준다. 어릴 적 선친의 `콩세알 이야기`는 할머니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치를 깨우쳐주었다. 할머니의 기행(?)이 소문나자 입던 옷이나 털실을 택배로 보내주는 이들이 있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오래된 장독이며 못 쓰는 현수막을 두고 가는 이들도 생겼다.
동갑내기 남편 김진영 할아버지와 한적한 시골마을로 온 지 24년. 선산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묘살이를 지낸 노부부는 지금도 밭에서 캐온 고구마, 옥수수를 삶아 제일 처음 것으로 어머니께 봉양한다.
부부는 손수 지은 집에 살면서 텃밭에다 먹고 살만치만 심어 그만큼만 거둔다. "가만히 있으면 치매 걸린다"며 서로의 손님이 오면 "김마담"이 되고 "이마담"이 된다. 이종숙 할머니는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아 "남편에게 위로상 줘야한다"고 우스개 소릴 한다. 할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다 받아준다.
김진영 할아버지의 전용 이발사는 할머니다. 20년 단골이지만 공짜란 없다. 1천원으로 시작한 이발비가 1만원이 될 때까지 20년을 모은 돈이 1백만 원. 할머니는 50만원을 강화 매화마름 보존에 써달라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본부에 건넸고, 라디오를 듣다 알게 된 전남 해남벽지의 작은교회 도서관에 30만원어치 책을 사주었다. 그리고 20만원은 치매노인 쉼터 도배비용으로 사용했다.
할머니는 버스를 아홉 번이나 갈아타고 경기도 연천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한마음애집` 식구들을 만나러간다. 여기만이 아니라 퇴촌 정신대할머니와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들도 오랜 말벗이다.
앞으로 할일이 많이 남아 게으를 짬이 없다는 이종숙 할머니는 일찍 드러누워 봤자 뭐해야지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단다. 이 할머니는 요즘 한마음애집 3총사인 또래 친구들과 함께 만두 3만개를 빚어, 백령도에 있는 군부대에 전해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사람들 얼굴이나 재산보고 결혼하고 그러는데... 예쁜 사람은 예식장 들어갈 때만 좋은 법이야. 음식 잘하는 사람은 먹을 때만 좋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 쓸 때만 좋아. 옆에 있어 편한 사람이 최고지. 함께 평생을 살 수 있어. 우리처럼. 호호호.... 분하고 서러운 일은 물에 띄우고 고맙고 감사한 일은 돌에 새기라 그랬어. 자기 욕심, 자기 식구나 내세우고 돈, 돈 그러는데 죽으면 돈 가져가요? 누가 잘사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 잘 사느냐가 문제지."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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