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잠시 엄마 주름 속에 묻고...` 병든 부모 공양 9년
[파이미디어 2005.12.29 09:57:46]
높이 비상하던 미술가가 날개를 접고 웅크리고 있다. ‘1~2년이면 되겠지’했던 것이 벌써 9년이다.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두고 미술가로서의 꿈만 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술가로서 앞날이 고속도로처럼 뚫려 있던 염주경씨가 ‘작업실’이 아닌 ‘집’을 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부모님 두 분 다 침대신세다. 백발의 두 노인은 이제, 딸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부모님이 편찮으시면서부터 평범했던 제 일상이 바뀌었어요. 미대를 졸업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가활동을 해오던 삶이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삶으로 변한 것이죠. 1년, 2년 하며 보냈던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네요.”
염주경씨의 부친은 뇌병변 2급, 모친은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아 방이복지관에 재가장애인으로 등록됐다. 수족이 되어주는 딸이 없으면 용변처리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부친의 경우, 지난 1996년 녹내장으로 한 쪽 시력을 잃고 뒤이어 파킨슨병으로 건강이 악화된 데다 재작년 낙상까지 하는 바람에 침대 붙박이 환자가 되었다.
모친의 몸 상태도 안 좋긴 매한가지다.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뇌수두증으로 인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다. 언어장애는 물론 마비증세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늙고 병드신 부모를 돌봐드릴 사람은 하늘 아래 주경씨 혼자뿐이다. 결혼한 언니는 미국에서 둥지를 튼 지 오래고, 사업에 실패한 오빠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 그래서 막내 딸 주경씨는 그림을 그리던 손으로 노부모의 병수발에 나섰다.
“부모님을 돌봐드리던 초창기에는 저녁 10시가 넘어도 작업실에 꼬박꼬박 갔어요.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안정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 삶도 제겐 가치가 있거든요. 작가로서의 꿈은 나중에 펼칠래요.”
한때 같이 활동하던 동료들의 기운찬 행보를 접할 때면 염주경씨는 프랑스 태생의 설치미술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를 떠올린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놀랍도록 큰 스케일의 작품을 선보이며 활동하는 작가를 보면서 그녀는 힘을 얻는다.
염주경씨는 작가의 꿈을 어머니의 고운 주름 속에 잠시 묻어두기로 했다. 오늘도 그녀는 걸음이 불편한 노모를 화장실로 안내하며 정겹게 노모와 손을 맞잡고 블루스를 춘다. (자료제공 = 아산사회복지재단 02-3010-2563) [파이뉴스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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