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로레알’직원들‘그룹 홈’돕기 1년
"보고싶은 그녀, 우렁각시님 사랑해요"
‘아이들 학교간 사이’ 몰래 찾아와 밥 빨래 청소 선물까지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입력 : 2005.12.14 19:09 01' / 수정 : 2005.12.15 04:08 58'
“어? 우리 집이 아닌가!”
“여기 와서 냉장고 좀 열어봐. 우유랑 반찬이 한가득이야.”
‘희년의 집’ 아이들이 마냥 신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온 사이, ‘마법’처럼 집안이 바뀌어 있는 것이다. 아침에 후다닥 가방을 챙기느라 책이며 옷가지가 여기저기 뒹굴었던 방 안이 말끔히 청소돼 있다. 가구마다 윤기가 흐르고, 부엌에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난다. 누가 다녀간 걸까. 주인공은 로레알 코리아의 ‘우렁각시’들이다. 우렁각시는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우리이웃 네트워크 참여) 직원들이 전국의 그룹홈에 자원봉사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1월부터 시작〈본지 3월10일 A1면 보도〉했다. 사람들이 없을 때 집안을 치우고 식사 준비를 해놓는 전래동화 속 주인공처럼, 우렁각시들은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몰래 찾아와 집안을 변신시킨다.
▲ “아이들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지…” 1일 오전 경기도 여주군‘희년의 집’. 로레알‘우렁각시’들이 그룹홈 엄마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고 있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허영한기자 younghan@chosun.com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희년의 집’은 이화형(61)씨가 운영하는 그룹홈이다. 이 원장을 포함한 ‘엄마’ 3명이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버림받은 아이들 32명을 키우고 있다.
2년 전 부모가 이혼하면서 맡겨진 희수(가명·11), 알코올중독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영찬이(가명·10)…. “조금만 기다려, 곧 데리러 올게” 하며 맡겨졌던 아이들의 둥지가 되어준 곳이다.
친자식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보지만 ‘엄마’ 셋이서 맡기엔 벅찬 살림이다. 주로 주방일을 담당하는 ‘큰 엄마’ 이난형(63)씨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밥을 하고, 6시에 아이들을 깨워서 밥 먹이고 옷 입혀 학교 보내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했다. 하루에 세탁기만 세 번씩 돌린다는 이영숙(48)씨도 “저녁 7시부터 순서대로 알림장 검사하고, 숙제를 봐준 후 9시부터 돌아가며 재우고 나면 녹초가 돼버린다”고 했다. 지친 엄마들을 돕기 위해 우렁각시 5~7명이 한 팀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희년의 집’을 찾는다.
지난 1일에는 로레알 이천 물류센터에서 직원 12명이 찾아와 엄마들과 함께 김장 700포기를 담갔다. 빨간 장갑을 끼고 서너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양념을 버무리고 무채를 썰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반찬도 하고 청소도 돕고 있어요. 봉사한 다음 날 아침엔 기분까지 상쾌해지던걸요.” 우렁각시 김영란(37)씨가 웃었다.
로레알 직원 중 우렁각시는 145명이다. 이들은 ‘희년의 집’과 함께 서울 구로구에 있는 ‘e-좋은 만남’, 송파구에 있는 ‘별빛 내리는 마을’ 등 그룹홈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는다.
우렁각시 프로젝트는 이 밖에도 올 한 해 동안 1억원을 모아 전국 7개 그룹홈에 생계비를 지원했다. 그룹홈 실무자들의 정보 공유를 위해 전국 200여개 그룹홈 통합 홈페이지(www.grouphome.or.kr)도 만들었다. 아이들 생일날 선물과 케이크를 몰래 보내주는 ‘생일 지킴이’와 그룹홈 엄마들의 머리를 손질해주는 등 다양한 봉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해피하우스’에 사는 세희(가명·7)는 로레알 코리아 최성아(28)씨가 보낸 생일카드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 그룹홈을 운영하는 오진석(41) 목사는 “아이들은 로레알 직원들이 보내준 선물과 카드를 받고 감동한다”며 “한번 상처를 받은 아이들에게 누군가 나를 기억해줬다는 경험은 아주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엄마 김미심(38)씨는 “생계비 600만원을 지원받은 덕분에 지난 여름에는 난생 처음 김밥을 싸들고 가족여행을 갔다”면서 “바닷가에서 방방 뛰며 놀던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씨와 김씨 부부는 친딸(10)을 포함, 모두 8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로레알 코리아 이선주 이사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는 많은 ‘그룹홈 엄마’들과 상처를 딛고 예쁘게 자라는 아이들 모두에게 응원의 손길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3년 동안 우렁각시를 더욱 활성화시켜 30여개 그룹홈을 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개의 아동·청소년 그룹홈에서 연간 55만여명의 아이들이 보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부 지원이 거의 없고, 후원자도 마땅치 않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음세대재단 방대욱 실장은 “정부는 2005년 그룹홈 60여곳을 시범사업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아동복지의 사각지대로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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