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의 옛날 이야기
옛날 옛날에 한 소년은 엄마아빠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죠. 또 주일이 되면 엄마아빠와 함께 교회 가고, 어린이날이 되면 놀이공원에 가서 청룡열차나 바이킹도 타고 놀았죠. 유난히도 아빠는 가족을 사랑하셨고, 늘 선물을 한아름씩 사오시는 자상한 분이셨죠. 소년은 그런 엄마아빠 슬하에서 당연히 행복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소년의 나이 열 살도 되기 전에 행운의 여신은 갑자기 등을 돌리고 말았어요. 태권도 사범이었던 소년의 아빠가 그만 심장이 멈춰진 겁니다. 소년은 너무나 슬퍼 아빠~아빠~ 불러봤지만 아무대답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나버렸죠. 그때부터 가엾은 소년은 먼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생각했어요. 자신의 행복을 앗아간 얄미운 여신을 원망하지 않고 홀로 남은 엄마를 아빠 몫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엄마도 역시 아들을 무척 사랑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죠. "하나님, 우리 모자에게 행복한 삶을 주시고 더 이상의 불행은 찾아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데 어느 날 행복인지 불행인지 소년에게는 새 아빠가 생겼답니다. 그러자 얼마 후 귀여운 여동생도 얻게되었고요. 아기는 점점 예쁘게 자라면서 오빠에게 사랑을 듬뿍 받게 되었어요. 소년은 재롱떠는 아기가 예뻐서 엄마엄마, 아기 예쁘지? 말해봐!.. 계속 엄마를 불러댔어요. 무슨 영문인지 엄마는 대답이 없었어요. 그러자 소년은 엄마의 딱딱한 모습을 살펴보았죠. 그래요.. 엄마는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소년과 아기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날이면 날마다 엄마는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소년은 그런 엄마를 점점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어린 동생도 자꾸 보채고 집안분위기도 먹구름이 넘실거리고 있었던 거죠. 맞아요.. 언제부터인지 엄마는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변해버렸어요. 기도한다고 헛소리만 계속하시더니 엄마는 결국 집을 뛰쳐 나가버리셨어요.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까요?
안타깝게도 엄마의 병이 정신질환이란 것을 소년은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런 불행이 모두 새 아빠가 생기면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하니 세상이 너무나 살기가 싫어진 거예요. 소년은 무작정 밖으로 나가 버렸죠. 날은 금방 어두워지고 배도 고프고 갈곳도 없었어요. 소년은 후회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것은 지옥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새 아빠로부터 맞아죽는 일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소년은 엄마가 그렇게 된 것이 새 아빠한테 심하게 맞아서 그렇다고 믿고 있나봐요. 그 이유는 그가 심한 알코올중독자이기에 그런 같아요. 물론 엄마도 새 아빠도 계속 경리치료를 받고 있지요. 소년은 거리에서 하루 이틀 버티며 춥고 배고프면 이렇게? 또 저렇게? 배를 채우고, 건물옥상이나 육교 밑이나 그리고 공중화장실에서 잠자고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죠.
때론 사정이 비슷한 거리의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집으로 돌아와 보지만 새 아빠의 폭력은 계속되었어요. 소년은 살기 위해 가출을 반복하였고, 그렇게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소년은 "열 세 살" 이란 나이를 먹게 되었어요.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퍽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이었겠지요.
지금까지 한 소년이 겪었던 지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봤습니다. 말하기조차 힘에 붙일 정도로 너무나 가냘픈 그가 목사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지요. 툭 건드리면 꺾일 것 같은 가느다란 팔목, 울긋불긋 얼룩진 피부, 그리고 힘이 없어 꺼져 가는 목소리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에서 그동안 아이가 어찌 살았는가를 살필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공포에 떨고 춥고 배가 고팠을까? 참으로 마음이 시리도록 아팠지요.
그러나 지금의 소년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리운 엄마를 한시도 잊을 수는 없지만 옛날의 악몽은 멀리 사라지고 밝은 내일만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았나 봅니다. 소년은 어찌나 순하고 생각이 깊은지요.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처럼 여기 이 소년도 건강하고 아주 멋지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2003. 11. 25/ 시설장 임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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