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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정민
작성일
200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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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따뜻한 십이월의 풍경
따뜻한 십이월의 풍경
일년 열두 달 모두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12월을 가장 좋아한다.
따스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람 휭휭 불고 눈이 내리는 겨울의 시작인 12월이 따스하다는 말이 그냥 들으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12월 풍경들을 생각해 본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군고구마 장사와 추운 날 집에 웅크리고 있는 아들, 딸 먹으라고 퇴근길에 군고구마를 사다주시는 아버지, 땡그렁 종소리를 울리면서 지하철 역 한 가운데서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구세군 자선냄비, 그리고 부끄러운 듯이 1000원짜리를 집어넣고 달아나는 꼬마들, 하지만 내가 12월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천도 아닌 내가 1년 중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는 건 다분히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어서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다. 어렸을 때는 단순하지만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렸었다.
4학년 때까지 선물을 꼬박꼬박 받았던 나는 산타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하면서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쏙쏙 가져다 주실까 싶어 한 번이라도 할아버지를 보겠다는 의지 아래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밤잠을 설치곤 했었다.
한 번은 새벽에 깨어나서 나와 동생의 머리맡에 있는 선물을 슬그머니 풀어보고는 동생선물이 더 마음에 들어서 몰래 내 머리맡에 놓고 내 거라고 우겼지만 부모님의 판결로 울면서 내걸 도로 가졌던 때도 있었다. 어쨌든 어렸을 때의 '크리스마스'는 선물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의 크리스마스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어졌기 때문에 친구들과 밤새 노는 날로 변해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워낙에 부모님이 엄격한 통금시간을 적용하셔서 친구들과 마음놓고 하루종일 놀 수 있는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뿐이었다. 거의 한 달을 졸라서 얻어낸 친구들과의 외박은 대단히 재미있는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그 자체가 나에게는 대단히 의미였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와서 크리스마스를 맞아하게 되었다. 대학생들의 크리스마스는 어째 연인들만 신나는 분위기여서 혼자인 나로서는 무척 심심하게 끝나버렸고 올해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는 무슨 선물을 받고 싶지?" 선배의 다정한 전화 목소리이다. 나는 장난치는 거냐고 물었다. 그 선배는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 "얼마 전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르고 계신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지!!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부모님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려고 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받는 게 마냥 행복했었지만 이제는 자신도 주는 사람의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나 역시 그동안 관심을 쏟지 않고 지내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걸 너무 당연시한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나도 그 선배처럼 주는 즐거움을 느껴보기로 했다. 비싸고 좋은 것은 아니어도 그 사람이 평소에 좋아했던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선물하기로 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엔 유난히 바쁜 생활이지만 평소에 고마움을 느꼈던 분들의 배려를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물건들을 보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올해 나의 십이월은 충분히 따스하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나누었던 소중한 사람들과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연세대학교 교육학과
한울타리 자원교사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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