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시설 남아돌고… 미신고시설 미어터지고
未신고 복지시설 폐쇄… 2만명 어디로
정부시설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제한...자격 까다로워
“극빈층만 혜택… 어중간한 빈곤층 320만명 사실상 방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장애인시설 ‘작은예수수녀회 낡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난한 대학생의 자취방만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촘촘히 앉아 있는 사람들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1일 이 방 곳곳에는 옥상에서 새는 물을 받치는 대야가 놓여 있었다.
작은예수수녀회’는 조건부 신고 시설이다. 18~50세의 정신·지체장애 1·2급 장애인 9명이 그룹홈(공동가정) 형태로 살고 있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엄경자(가명·60) 할머니는 방부터 부엌까지 기어다닌다. 좁은 3개의 방마다 턱이 있어 휠체어를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장애인들은 “이곳에서 몸을 편히 쉴 수 있게 된 게 행운”이라고 했다.
작은예수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시설 33개소에는 무려 600여명의 장애인들이‘제발 우리를 받아달라’며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예수회처럼 전국의 미신고 시설 운영자들은 한 달에 수십통씩 ‘제발 우리 가족을 받아달라’는 전화를 받는다고 하소연이다.
그렇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는 시설들은 오히려 공간이 남아도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 ‘20여평서 9명 생활’ 작은예수수녀회가 운영하는 20여평 남짓한 이 미신고시설에는 정신지체인 9명이 부대끼며 생활하고 있다. 조인원기자 oin1.chosun@com
14일 서울 양천구 SOS어린이마을. 빨간 벽돌로 지은 아담한 2층 집 15채가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SOS어린이마을은 집 한 채마다 미혼의 ‘어머니’가 7~8명과 함께 한 가정을 이뤄 지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정원은 150명이지만 현재 살고 있는 아동은 114명에 불과하다.
▲ '1만평서 114명 생활' 신고시설인 SOS어린이마을은 대지 1만평에 어린이 7~8명이 함께 생활하는 2층 벽돌집 15동을 갖추고 있다.
이곳 정원은 150명이지만, 입소아동은 114명에 불과하다. 조인원기자
전국에 있는 다른 아동복지시설의 상황도 비슷하다. 전체 279개 시설의 정원 2만6210명 중 실제 생활하고 있는 아동의 수는 정원의 72%인 1만8818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신고 시설에는 1620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최근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노인시설 역시 공간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2003년 12월 현재 전국의 노인시설은 357개소. 정원은 2만7027명이지만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정원의 75.6%인 2만439명이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선 한국의 사회복지시설이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국가 지원시설이 비는 것은 시설에들어갈 자격이 되는 사람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현재 무료로 운영되는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인 노인이 정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생활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대상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이거나 부양 의무자로부터 부양을 받을 수 없는 법정 장애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정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절대 빈곤층은 140만명 가량으로 전 인구의 3.1%에 불과하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임성만 교수는 “전체 인구의 3.1%를 차지하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시설보호가 필요한 노인이나 장애인으로 그 비율을 좁히면 전체 인구의 0.5%도 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0.5% 정도 되는 대상자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시설이 배분되고 있어 국가가 지원하는 시설에서는 정원을 채우기가 힘든 반면, 미신고 시설에는 신고 시설의 입소 기준에서 배제된 대다수의 장애인들이나 노인들로 북적이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월 소득 105만~126만원선으로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평균 소득 105만5090원)를 넘어선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차상위 계층’ 320만명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임 교수는 “현 시스템에서는 차상위 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까지도 가정에서 장애가 발생하거나 치매 등에 걸릴 경우 갈 곳이 없어 막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력 : 2004.09.14 17
허인정기자 njung@chosun.com
염강수기자 ksyoum@chosun.com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이용수기자 hejsu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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