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꽃멀미로 깊어지고
이즈음의 안솔기엔
이름을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의 꽃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짧디짧은 절정에 달한 왕벚꽃,
뭉텅뭉텅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 목련,
수줍게 고개 늘어뜨린 개나리,
숲 속에 옹기종기 숨어있는 진달래,
이처럼 눈길 끄는 화려한 꽃들 말고도
미처 꽃이라 여기지 못하는
오리나무와 서어나무의 늘어진 수꽃에다가
길섶이나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그 숱한 풀들
무더기로 고개 떨군 흰 남산제비꽃,
양지 바른 곳의 노란 양지꽃,
코딱지처럼 생긴 분홍의 광대나물꽃,
이름처럼 아름다운 자운영,
그 추운 겨울 넘기고 화려한 봄을 맞는 노란 배추꽃,
흔하디 흔한 꽃마리, 꽃다지, 큰개불알풀...
이렇게 꽃을 피우지 않는 나무나 풀은 정말 없습니다.
화려하든 소박하든 제 나름의 꽃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제 나름의 때에 맞춰 피워냅니다.
하지만 그 꽃을 피웠을 때만
그 나무나 그 꽃인 건 분명 아닐 겁니다.
앙상한 몸뚱아리만으로 그 추운 겨울 넘길 때도
그 나무는 그 나무로 제 자리에 있었고
풀들은 풀들대로 씨앗으로 제 자리에 있었겠지요.
그렇기에 나무와 풀들의 365일 모두가
봄날의 꽃처럼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둔철산 자락에서의 하루하루가
꽃멀미로 아득해지는 이즈음의 날들입니다.
hani.co.kr/행복한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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